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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화유산 답사기]율곡과 밤나무
  • 등록일2007-09-11
  • 작성자북부청 / 홍현정
  • 조회6093
  한 달 동안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가 이제야 끝나나 했더니 ‘게릴라성 호우’가 장맛비처럼 내린다. 어제 밤만 하더라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퍼붓던 비가 오늘 아침엔 말끔하게 개었다. 오랜만에 구름사이로 얼굴을 드러낸 파란 하늘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씨가 이어지리라는 보장도 없겠다. 산 많고 물 맑은 인제에서도 가장 사람 손길이 묻지 않은 상남지방, 그 중에서도 산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것 같은 미산리(美山) 쪽으로 떠나보기로 했다.



   홍천으로 향하는 국도에서 바라본 소양강의 수위는 부쩍 높아져 있어 지난밤에 내린 비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여분을 달리니 상남은 좌회전하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한 채, 두 채 집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내린천은 도로 옆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내린천 물줄기를 따라 10여분 가량 더 들어가 오래된 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졌다는 고목동(古木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편편한 산길을 산책하듯 올라간 곳엔 밤나무 숲이 있었고, 까실까실한 연녹색 밤송이가 달린 밤나무 사이로 어림잡아 지름 50cm가 넘는 밤나무가 드문드문 보였다. 이 곳의 고목은 밤나무였구나! 이 나무들은 어떤 사연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대표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인제군 향토 사료집]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율곡 이이와 부친 이원수가 인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오랜 보행으로 고단하여 깊이 잠든 이원수의 꿈속에 갓을 쓰고 흰 옷을 입은 도사가 나타나더니 “네 아들 수명은 길지 않구나!”했다. 이에 원수가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도사는 무서운 호랑이로 변하더니 “이 마을 뒷산에 밤나무를 천 그루를 심고 떠나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다음날 아침부터 부자(父子)는 서둘러 묘목을 구하여 며칠동안 나무를 심었다. 마지막 나무를 심던 날 꿈에 보았던 호랑이가 나타나 밤나무를 세어보았는데, 한그루가 모자라는 999그루였다. 호랑이는 “거짓말로 천명을 거역하려 하느냐”며 화를 내며 율곡을 데려가려 하였다. 원수가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상수리나무가 튀어나오며 “나도 밤나무” 라고 외쳐 화를 면했다고 한다.
   [율곡과 밤나무] 이야기는 그의 고향 파주를 배경으로 한 설화가 익히 알려져 있어 이 이야기는 모방작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율곡은 그가 거쳐갔던 지역 대부분에 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이는 그가 주장한 십만양병설을 뒷받침해주는 행동으로, 병사들이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밤을 구해 식량으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밤나무는 옛날 우리 조상들의 중요한 먹거리였으며, 밤나무라는 이름도 “밥나무”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곳에 밤나무가 심겨진 이유가 어떻든 밤나무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밤나무 원목은 철도침목 · 가구 · 칠기 등으로, 용재로 쓰기 어려운 것은 버섯재배용 나무로 사용된다. 또한, 겨울밤 간식거리로 유명한 열매(밤)는 제사상 · 차례상 및 결혼식 폐백에도 빠지지 않으며, 마누카꿀 보다도 효능이 우수한 밤꿀 역시 밤나무가 주는 선물이다. 죽어서도 동 · 식물의 서식처가 되어 숲의 일원으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밤나무의 좋은 점을 율곡선생은 미리 아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인제국유림관리소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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