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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문화유산 답사기]구룡령 옛길 탐사기
  • 등록일2007-08-30
  • 작성자북부청 / 홍현정
  • 조회6139
북부지방산림청 남해인


 구룡령의 옛길을 찾아 56번 국도(홍천-양양)의 백두대간의 구룡령에서 북쪽방향인 갈전곡봉을 향해 약40여분을 등반하자 편평한 평지와 같은 구룡령 옛길 +자로가 나온다.
 이 십자로에는 1950년대까지 할머니가 귀틀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 길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 밀주와 식사를 제공하였으며 숙소로 이용하기도 하였는데 새로운 56번국도가 생기면서 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이 귀틀집도 사라졌다고 한다.



 현재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 정상에서 북동쪽에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말까지 산적(도둑)의 진지로 이 길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소지한 재물을 빼앗긴 장소라 한다.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는 이 옛길은 고려시대까지는 전혀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중엽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이 어릴때부터 개를 기르며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산너머 아름다운 처녀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처녀에게 장가를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게 된 개가 길을 안내하여 처녀에데려오는데 홍천의 동내 총각들이 몽둥이를 들고 뒤를 따라 왔으나 구름이 끼여 양양의 노총각은 무사히 이 처녀와 장가를 가게 되어 어머니를 모시고 더욱 행복하게 살게 되었는데 이후로 이 길을 개가 안내하여 장가를 간 길이라 하여 구운령이라 하였다.



그후 이 길을 개 구(狗)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구운령” 이라 하였는데 지금의 구룡령이란 지명은 현재의 56번국도가 생기면서 누군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구룡령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 옛길은 조선시대 말까지도 젊은 청년 30명이상이 되어야만 넘어가던 길로 항상 산적이 많았으며 일본사람들도 이 길을 감히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홍천 내면 명개리 삼봉자연휴양림 입구와 “명지거리” 입구 중간에는 “임바우”한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조선시대 홍천군수와 양양군수가 서로 명개리를 자신들의 관할하는 구역이라 자주 다투었는데 그 구역을 명확히 하고자 각각 자신의 관청에서 동일한 시간에 출발하여 만난장소를 군의 경계로 하기로 약속하고 출발하여 만난장소가 바로 “임바우”라는 바위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후 이곳을 홍천과 양양의 경계로 삼기로 하였는데 1950발생한 6ㆍ25전쟁때부터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양양과 홍천의 경계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그 경계를 중심으로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홍천 내면 명개리 “명지거리”에는 폐교된 초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의 명칭은 양양군 서면에 있는 현서초등학교 명개분교로 불리우다 10여년전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이 학교에는 70년대 이전까지는 학생수가 100여명에 달했으며 400여호에 달하였는데 지역주민들은 산간오지에서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더 많이 있었다고 80세를 바라보는 명지거리의 김성국 할아버지는 회상하여 주었다.
 명지거리에서 옛길을 향해 올라가면 계곡에 약수가 하나 있는데 피부병위장병 등에 약효가 좋아 마을사람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으며, 백두대간 정상의 십자로에서 약200m를 내려오면 “서서물나드리”가 있는데 이곳의 산이 얼마나 험한지 물이 흐르는 바위 앞에 똑바로 서서 물을 먹을 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에서 옛길 십자로에서 홍천 방향으로 약 20m아래 좌측에는 커다란 무덤이 하나있는데 이 무덤은 일본이 지배할 당시 십자로에서 양양방향에 철이 생산되는 광산이 있었는데 철을 분리할 장소가 양양방향은 급경사라 없어 대간을 넘어 홍천 방향에서 선별작업을 하였는데 그 찌거기가 쌓여 무덤처럼 보이고 있으며 최근 10여년 전까지도 일부 광산개발자가 자주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본 구운령 옛길은 구룡령에서 갈전곡봉으로 향하여 2.0km 약40분 소요되며 이곳 십자로에서 양양 서면 방향으로 약3.0km를 등산로 정비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홍천 방향은 약4.0km 정도이며 십자로에서 명지거리 마을까지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소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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